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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살아온, 동네

약초밭이 많았던 중림동

중림동은 중림동 외에 의주로 2가, 만리동 1,2가 3개 동까지 포함한다.

조선 초 한성부를 5부 52방으로 나누었을 때, 서부 반석방(盤石坊, 하위에 약전중동과 한림동이 있었음)과 반송방(盤松坊)에 속했다. 1914년 4월 1일 일제가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약전중동에서 ‘중동’을, 한림동에서 ‘림’ 자를 따와 중림정(中林町)으로 불렀다가 지금의 중림동이 되었다.

중림동은 약현(藥峴, 약밭골․약고개라고도 함)이라 할 정도로 예로부터 약초 재배하는 밭이 많았다. 조선 시대에는 서울 장안의 한약재를 공급하는 곳이기도 했다. ‘약전중동’이란 명칭은 약현 중에서도 "가운뎃말(한 가운데 마을)"이었던 데서 유래했으며, ‘한림동’은 조선 시대에 이정암 3형제가 모두 이곳에 살면서 한림 벼슬을 지냈던 데서 유래했다. 중림동의 옛 마을 이름으로는 가운뎃말, 한림골, 형제우물골 등이 있다.

의주로는 서울-의주 간 시발 지역이었다. 북으로 가는 도성문인 사대문에서 두 번째 블록으로 의주로 통하는 길이란 뜻에서 일제 경성부 시대에는 ‘의주통2정목’이라 하던 것을 의주로로 고친 것이다. 만리동은 광복 후 처음 만들어진 이름인데, 만리현이란 이름에서 유래했다. 세종 때 한글 창제를 반대한 최만리가 살던 곳이어서 만리동이라고 했다는 설도 있다.

1947년 말 중림동 관내의 각 동을 살펴보면, 의주로2가에는 의주로 1, 2가동회, 만리동1가에는 만리동1가동회, 만리동2가에는 만리동2가서부동회와 남부동회가 각각 있었다. 1955년 4월 18일 서울시 조례 제66호 ‘동설치조례’에 따라 동장 관할 구역의 행정동제를 실시할 때 중림동 일원을 관할하는 중림동사무소가 만들어졌다. 1975년 10월 1일 대통령령 제7816호로 구, 동의 관할 구역이 전면적으로 재편성되면서 중림동은 중구로 편입되었고, 중림동을 비롯해 의주로 2가 일원이 관할 구역이 되었다. 1980년 7월 1일 서울시 조례 제1413호 ‘동사무소 설치조례’에 따라 만리동사무소가 없어지고 중림동 관할 구역으로 병합되어 지금에 이르렀다.